조용하게, 집으로 온다. (Apr 30, 2013)
조용하게, 집으로 온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일이 끝나면 조용하게 집으로 온다. 일곱시에 끝나도, 열한시에 끝나도, 새벽에 끝나도, 조용하게 집으로 온다.
6년 동안, 조용하게 집으로 온 적이 없었다. 자취를 하거나, 학교에서 살았다. 밤을 새고, 해뜰 때 자고, 해질 때 일어나고, 깜깜한 밤에 일어났다. 조형관에서 한발짝도 안나가기도 하고, 새벽 산책을 하기도 하고, 혼자 서울을 걸어다니기도 했다. 가끔이 아니라, 6년 동안.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쥬스를 마시고, 컴퓨터를 하고, 불을 끄고, 잠을 잔다.
밤 열시부터 정신이 말짱해져서 열심히 작업을 하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심심할 땐 조형관에 있는 애들을 보러 한바퀴 돌았다. 가끔 운이 좋아서 할 일 없는 낮에 잠이 깨면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가서 책을 읽었다. 가장 기분 좋을 때는 해질 녘 벤치.
음. 20대를 잘 보냈군. 서른 살도. 지금은 낮의 나를 본다. 6년 동안 밤에서 산 것 치고는 잘 지낸다. 그래, 점점 더 잘 지내 보려고 한다. 마음 껏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그 때를 동경하지 말고.
/* ps.난 배지처럼 간단한 교훈같은 말은 뭘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plain text를 예쁜 명조체로 바꾸고, 줄넘김도 내가 정하고, 중간중간 가로가 긴 사진을 넣고 싶다. 편집창과 실제 뿌려지는 글의 너비가 달라서 맘대로 줄넘김이 되는 건, ‘줄을 넘기는 건 문단을 바꿀 때나 하는 짓이야’ 라는건 작성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옛날이 그리운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