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Aug 09, 2021)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첫 번째 소설. 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일요일의 한 낮. 짧은 단편소설. 아주 강렬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소설을, 그 풍경을 상상하며 읽었다. 생각보다 잔잔하게 끝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구나.
문학상 작품집이라 그런지, 평론같은 리뷰가 11쪽이나 길게 적혀있었다. 리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이런! 나는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했구나. 소설의 구조와 관계들에 대한 리뷰는 갑자기 나를 글자만 읽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바보처럼 만들어버렸다. 이런 흥미로운 리뷰라니.
리뷰의 첫머리부터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내용이다.
사람들은 애써 진흙을 빚어 항아리를 만든다. 그러나 항아리가 만들어지면 실제로 쓰이는 것은 그 항아리가 품고 있는 빈 공간이다. 김금희의 소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는 동안 왜 이런 ‘도덕경’의 은유가 머릿속에 어른거렸을까? 작품이 전형적인 액자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그랬을까? 김금희는 두 폭의 아름답고 적막한 밤의 장면들 사이에 흘러간 젊은 날의 사랑과 좌절, 즉 삶의 시간을 펼쳐놓는다. 그 ‘비어 있는 공간’으로서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삶이라는 ‘항아리’는 상호작용에 의하여 서로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 대한 이런 해석도 재미있었다.
소설은 그 꽃 피는 봄날 밤 사과밭과 서리 내린 늦가을 사과밭 사이, 즉 “그해 여름”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찾아온 사랑의 “발생”과 분화, 그리고 노화 혹은 소멸을 이야기하는 김금희표 발생학의 한 견본이다. …… 물론 이 소설에서 잠재 상태로부터 현실화로 옮겨가는 “발생”의 주체는 “사랑”이다. 삶의 열기가 술독처럼 끓어오르는 어떤 현실, 가령 젊음과 여름의 시장은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화자는 말한다. “우리는 와글와글한 인파와 소음 속에 합류했다. 삶의 뭉근한 긴장 속으로. 그것은 확실히 발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들이었다. …… 나는 푸성귀며 고기며 생선과 화초가 뒤섞여 있는 시장 어딘가에서 자주 웃었고 사랑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첫머리의 항아리 비유가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뒷부분에 그 비유를 더 의미있게 만드는 이야기를 덧붙여 전달한다.
앞에서 언급한 ‘도덕경’의 항아리와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이 소설의 액자 형식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그러나 항아리의 진정한 쓰임새가 그 비어 있는 내부라 하더라도 작품으로서의 항아리는 그 자체의 정교한 형태와 구조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빈 공간을 살아 숨쉬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의 정교한 형식적 구조적 장치들은 작품 도처에 숨어 있는 대칭, 대조, 대립 혹은 균형이라는 이원적 관계에 의존한다.
조금 앞으로 돌아와, 작가노트에서는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첫 장편을 내고, 몇 년간 왕래가 없던 은사에게 책을 보냈다. 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나의 현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그후로 몇 달 지나 은사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끝이 찌릿할 정도의 긴장이 일었다. 은사는 책에 관한 자신의 느낌을 말하면서 그 작품이 채 넘지 못한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체로느 응원의 맥락이어서 나는 은사에게 이메일이 아니라 꼭 손편지로 감사를 전하리라 다짐했다. 아주 아름다운 편지지를 사야지, 혹은 카드를. 그후로 틈이 날 때마다, 심지어 외국 여행중에도 은사에게 보낼 만한 무언가를 찾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끝내 찾지 못했고 결국 나는 그 애정어린 격려에 답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좋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조금은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때로 자책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쓴 뒤 다행히 자책은 방향을 틀었다. 그 일은 사람들 사이에 쉬이 일어나는 오해나 서운함 같은 것이 아니라, 좋은 의도로 전해졌으나 청자의 사정으로 끝내 나쁜 기별이 되고 만 그런 일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시절의 무게를 깨닫게 하는 일이었다는 쪽으로. 때론 너무 중요해서 당장은 보낼 수 없는 응답도 있는 법이니까.
소설은 짧았기에, 언제든 가볍게 다시 읽을 수 있기에,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한 부분만 옮겨본다.
팔월이 되자 우리 세 사람은 여기로 자주 나와 더위를 식혔다. 고택에는 에어컨이 아예 없었다. 팔당호로 이어지는 천은 너무 느리게 흘러서 어떨 때는 멈춘 듯 보였는데, 댐 때문이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그 마을에서 천변을 향해 걷는 우리는 꽤 돌출적인 존재들이었다. 걸음이 빨랐고 소리가 높았고 표정이 다채로웠고 완전히 제어되지 않는 에너지가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가든 반응이 컸고 나보다 좀더 거침없었던 강선은 자주 논두렁이나 둑길에 멈춰선 채 미쳤어! 하고 자지러지곤 했다. 와 우리 정말 미쳤다!
어느 저녁, 우리는 맥주를 가지고 천변으로 나갔다. 읍내에 나간 기오성이 포장해 온 피자를 들고. 교수는 마을 노인들이 안 좋게 본다며 담배는 물론이고 술도 못하게 했다. 순식간에 맥주와 피자를 먹어치운 우리는 좀 느긋하게 앉아서 큰고니들이 내려않은 하천을 바라보았다.
“여름에 왜 고니가 있지?”
“그러게요, 겨울 철새 아닌가.”
기오성의 말에 내가 동의하는 동안 강선은 말이 없었다.
“그래, 넌 어디서 왔니?”
기오성이 그렇게 말하며 물수제비를 떴고 조약돌은 얼마 가지 않아 잠겨버렸다.
“페퍼로니에서 왔어.”
강선이 피자 박스를 구겨 접으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웃었는데, 강선이 웃을 일이 아니라 자기는 한국에 돌아와 애들이 자꾸 그렇게 물어서 그런 대답을 했다고 했다. 페퍼로니피자는 강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해가 지면서 새들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그들의 두 발 아래로 물이 조금씩이라도 흐르지 않았다면, 그렇게 해서 시간의 전진을 알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다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화제로 몇 마디 나누고 각자 생각에 잠겼는데, 강선이 나란히 앉아 있는 나와 기오성 편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마치 혼잣말처럼 눈빛 좀 봐, 라고 중얼거렸다. 언니를 보는 기오빠 눈빛에 사랑이 가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