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일기를 쓰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일기, 노트의 일기, 블로그의 일기, 싸이의 일기들을 되새겨보면, 대부분은 옛날의 추억이다.

그저께 밤, 대학을 졸업하고 어제 첫 출근한 창목이는 그 밤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바다를 건너 다른 육지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배를타고 쭉 오다가, 이제부터는 헤엄쳐서 가래. 이런 느낌이야. 요즘의 나도 아직은 막연하지만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바다를 헤엄쳐 나갈 수 있을까? 내가 하고있는 것은 단지 지식의 습득으로 해결 될 것들이 아닌데.. 라는 것이 요즘 나의 큰 고민거리다.

하지만 이런 고민거리들을 제쳐두고, 혼자서 자주 하는 생각과, 창목이를 만나며 자주 하는 이야기는 역시 옛날의 추억이다. 현재의 상황. 창목이는 취업을 했고, 내년쯤 결혼을 할 예정이다. 영신이는 5월말에 결혼을 한다. 해영이도 곧 결혼을 할 듯 하다. 물론 나는 뭐, 아직. 대학 3학년이다.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되새길때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은 몇가지이다. 그 어린 고1짜리들이 안산에 가서 쉬리를 같이보고 포켓볼도 치고했지. 체육대회나 시험 끝나고나 축제 끝나고 하면 자주 같이 술마시곤 했는데. 야자튀고 안양까지가서 커피숍에서 놀기도 했는데. 고2때 엠티갔던 것도 참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벌써 10년 전 얘기다. 둘 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어쩌면 넷 다 노인이 되어서도 만나면 하는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60년 뒤, 그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 덕분이다. 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할 수 있는 그 때를 함께보낸 친구들. 고3때 한번 멀어지고, 스무살때 또 한번 멀어지고, 창목이와 내가 군대갔을때 또 멀어진, 나만 남기고 모두 사회로 간 친구들, 결혼을 앞둔 친구들. 정말 하늘에 빌고 싶은건 이 친구들이 언제나 곁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옛날의 추억은 군대 얘기보다도 더 끝이 없다. 혼자서도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만의 추억은 언제나 아득하고 외롭다.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인 PC통신 시절은 우리 세대의 추억거리이다. 대부분 중학교 2,3학년때부터 고3때까지 밤의 시간을 할애했던 공간이니까. 별 걱정거리가 없던 학생 시절에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때만 해도 그곳은 깊은 산골의 시냇물이었고 별을 좋아하고 달을 동경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방이었다. 무엇이든 ‘글자’가 해결해주고 ‘글자’로 소통했다. 자신도, 감정도, 추억도. 무엇보다도 ID라는 또 다른 나.

근래의 추억은 점점 쉽게 잊혀진다. 추억이 없다고 느낄만큼. 이점에서는 정말로 나이를 먹어간다는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것은, 곁에있는 사람들과 놀 시간이 부족해지고, 신경쓸 것이 많아지고, 계산적이 되어가고, 자신의 생각-가치관이 굳어가고, 그냥 쉬려고 한다는 것. 그래도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시간도 많고, 여행도 더 자주 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여러 곳을 간다. 하지만 그것을 추억속에 넣을 힘이 부족한건지, 추억이 되기전에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 아직 ‘추억’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요즈음의 내가 나이들면서 바뀐 것은 머릿속 생각으로는 좀 더 여러방향, 입장에서 상황을 관찰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또 남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지고 -현재의 나는 그것이 ‘남이 느끼는 배려’와는 틀린것이라 보고있어. 어떻게 생각하니 선기야?-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꿈과 희망’은 도데체 어디로 빠져나간 것일까…

오늘 느꼈던 거의 유일한 기쁨. 자정이 넘어서,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고 건조기에서 막 꺼낸 이불보를 만졌을때의 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그래…현재를 즐거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