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day (Jan 18, 2024)
The remains of the day. 우리나라의 책/영화 이름으로는 ‘남아있는 나날’. 90년대의 영화지만, 이번에 일당백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제야 보게 되었다. 일당백에서 워낙 많은 것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줘서 많이 들은 상태에서 영화를 봤지만 그런 것들이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봤다면 몰랐을 것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스티븐슨이 감정을 최대한 나타내지 않고 표정도 잘 변하지 않지만, 그 눈과 눈에 고여있는 눈물로 감정을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집사의 이야기,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저택과 저택에서 이뤄지는 회의들과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적인 일인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뜻밖의 상황들은 가끔씩 스티븐슨의 리듬에 끼어들어 스티븐슨에게 힘든 판단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집사인 스티븐슨은 집사로서의 역할을 택한다. 그러다 결국 그때마다 놓친 개인적인 일들은 후회로 남게 된다. 물론 그 후회를 언제나 드러내지는 않지만.
책과 영화는 그 시절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우리나라에서 오역이나 의역한 말인 ‘남아있는 나날’은 그 시절의 흔적을 떠올리고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감상의 갈래 중 하나를 짚은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선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끝을 맺게 된다. 저택의 방에 잘못 들어온 비둘기가 나가려고 애쓰다가, 결국 집사가 연 창문으로 주인이 새를 내보내주고, 다시 집사가 창살이 많은 그 창문을 닫고 창살 안에서 밖을 보는 집사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감상으로 거기서 한 단계 도약을 해보자면 나의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겠다.
그래도 가장 감정이 크게 느껴졌던 것은 역시 스티튼슨과 켄튼이 만나는 마지막 즈음의 장면, 스티븐슨과 켄튼이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밤의 빗속에서 버스를 태워보내며 더 이야기 나눌 겨를 없이 바로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남아있는 나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 때의 기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현재의 본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속에 있는 오래된 저택과는 정 반대인, 반짝반짝 형광등이 들어오는 다리에서의 이야기. 사람들은 가로등같은 불이 들어오면 생기에 넘치고 좋아한다고, 왜 그러냐고, 하루 중 저녁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한다고,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한다고. 당신은 어떠냐고, 어떤 것을 기다리냐고, 저택으로 돌아가서 빨리 하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자기는 항상 일하고 또 일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잘 지내라고, 당신도 잘 지내라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감상적인 말을 하게 되나보다고, 고맙다고, 버스가 온다고, 항상 늦던데 오늘은 제때 온다고,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정말 반가웠다고, 정말 기뻤다고, 잘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