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Nov 03, 2023)
2021년 4월 4일에 쓴 글이 서랍에 고이 남아있었다. 왜 발행하는걸 깜박했을까? 다시 한번 읽고, 이제야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잠깐의 생각을 한다. 2년 반 전, 거의 한달간의 제주 여행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부모님과 한 주를 보냈었고, 게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심지어 체크아웃한 게하에 매일 밤 놀러가고, 서울에서 내려온 모임 친구들과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아마 그 때는 사람한테 말도 잘 안거는 내가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야해!’라고 마음먹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글에서도 그런 기분이 느껴지고, 무척이나 좋았던 경험이 다시 떠오른다. 특히 ‘환대’에 대한 것. 아래의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그 때, 게하에서 군대가기 몇 주 전인 남자애들 둘을 만났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몇살 적은 친구도 한명. 그래서 우리는 불쌍한 그 어린 두 명을 위해 밤에 밖에 나가 술을 사주었다. 이것도 내가 한 환대라고 하면 환대였을까.
하지만 역시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나보다. 제주에서 일주일 넘게 있는 지금,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2021년보다 더 전에, 발리에서 한달 간 있을 땐 사람이 그렇게 그리웠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다. 2023년 11월의 제주 여행은, 따로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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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1년의 글
##휴식의 끄트머리에서
한달간의 휴식이 이제 끝난다. 거의 매년 한달정도 씩은 쉬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쉬어본 것은 몇 년 만이다. 게다가 비온 다음 날인 오늘의 날씨는 너무나도 좋아서, 휴식의 끝에 딱 좋은 날씨다.
한달이 조금 되지 않게 제주도에 내려가 있었다. 배를 차에 싣고 내려가, 이곳저곳 숙소를 다니며 쉬었다. 제주에 있는 동안 일기를 쓰려고 했으나, 결국 한두번 밖에 쓰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그 한달이 그냥 지나가버린 듯 하다. 다시 기억을 되새기며 조금이라도 적어두어야 잊혀지지 않겠지 생각을 하며 글을 끄적대어본다. 제대로 딱 한번 쓰다 말았던 일기를 먼저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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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내려온지 19일 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느즈막히 일어나 호스트님도 없는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조금 읽고, 외투를 손으로 빨고 마당에 널어두었다.
세탁기가 있었는데 수도가 잠겨있는 것인지 내가 사용법을 몰라서인지 동작을 하지 않았다. 음, 아이폰으로 Turtles의 Happy Together를 틀고 바지주머니에 넣고, 하는 수 없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열심히 손빨래를 했다. Cranberries의 Dreams를 틀었다면 빨래하는 기분이 좀 달랐을까? 아무튼 이렇게 손빨래를 한게 얼마만인지. 잠깐이마나 무척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빨래를 꽉 짜고, 탁탁 털어서 마당의 적당한 곳에 널어두었다. 오늘은 맑게 개인 날은 아니지만, 저녁까지 많이 마르겠지? 하며.
2주가 넘게 여행을 왔어도 여유로운 느낌이 잘 들지 않았는데, 요 며칠은 여유로운 느낌도 들고 정말 여행을 와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제야 좀 기운이 차려진걸까? 아니면 게하와 숙소에서 함께 지내기 즐거운 사람들을 만나서 정화가 된 것일까. 원래 한달을 지낼 계획으로 내려왔다가, 지난 주에는 한달이 너무 긴 것 같아, 집에서 해야할 이것저것(빨래, 옷정리, 청소, 화분 물주기, 봄맞이 베란다 청소 등등)이 떠오르며 일찍 가야겠다 마음먹고 다음 주에 올라가는 배편을 예약했다. 아마 아직까지 예약을 해두지 않았더라면 더 있기로 했을 것이다. 뭐 그래도 그렇게 정했으니 그것도 좋겠지. 청소도 하기는 해야하고, 회사에 돌아가기 전 마음의 준비도 좀 해야하니 말이다.
일주일정도 지냈던 게하는 3일 전에 체크아웃했지만, 게하에 있는 분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돌아다니고, 또 저녁에는 게하에 몰래 가서 놀고 있다. 그 게하 공간은 모닥불처럼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매력이 있고, 함께 했던 분들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무척 즐거운 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떠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 곳에 한발을 담근 채 그 곳의 게스트마냥 생활하고 있다. 게하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정말 많은 주제들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 몇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여행을 할 때, 어느 곳을 여행하든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그 곳을 여행하는 느낌보다는 사람들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 그래서 여기가 인도이든 유럽이든, 사실 그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한편으로는 아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좋다는 이야기로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도의 게하에 계속 오는거겠지?
여기에 내려와서, 항상 하는 걱정은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저녁은 또 뭘 먹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함께 했던 게하 친구분이 가끔 툭 던지는 말이 있었는데, 뭘 먹을지가 오늘 최대의 고민이라는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얼마나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매일 이런 생각들도 떠올린다면 여행이 더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다 읽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그에 따르는 ‘환대’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신뢰하면 생각치 못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도 있고, 나도 누군가를 돕고, 도움받고, 또 나중에 그것을 다른사람에게 갚는 것의 즐거운 경험. 나도 많이 받았고, 가끔 주기도 했고, 또 기대하게 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게하에 머무는 한 분은 단톡방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저 이제 숙소에 왔어요. 픽업이 필요하신 분은 언제든 연락주세요. 픽업비는 계란이나 방울토마토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런 멋진 픽업 문구라니. 그에 대한 답으로 누군가는 ‘방토는 판포 지역화폐인가요’ 센스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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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마지막의 환대와 비슷한 것이다. 내가 정말 못하는 것. 여행 중간에 혼자 이틀간 점심을 같은 가게에서 먹었다. 마루나키친이라는 곳인데, 딱새우정식이 아주 맛있어서 이틀 동안 그걸 시켜먹었다. 가게 주인이 첫날에는 먹는 방법을 잘 설명해주고, 두번째 날에는 약간의 눈인사로 반기며 메뉴를 이야기하려는데 ‘딱새우장 정식이요?’라고 먼저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이번에는 먹는 방법을 따로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번째 날에는 게하에서 친해진 분과 함께 갔는데, 티는 잘 나지 않았지만 나를 기억한다는 정도의 눈인사를 해주고 안내를 해주었다. 이번에도 딱새우장 정식을 시켰는데, 게하 친구에게 먹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주더니, 나머지 모르는 것은 나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돌아갔다. 이런, 역시 알고 있었어. 그리고 이렇게 센스있게 나와 손님을 대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탄했던 것은, 다음 날 내가 다른 숙소로 떠난 후 게하 친구 혼자 그 가게에 갔는데, 다 먹고 계산하는 와중에 가게 주인이 왜 나와 함께 오지 않고 혼자 왔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또 오셨네요’, ‘친구분이랑 오셨네요’라는 인사가 아니라, 가게에서 일하며 대화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기억과 환대를 자연스럽게 녹여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행자들이 많은, 조금은 여유있는 곳이라 그런 센스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런 대화를 겪게 된다는 것도, 그런 대화를 여유있는 상황에서 접하게 된다는 것도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여유가 생기면 그런 센스를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