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Apr 09, 2024)
제목은 알고 있었으나 읽지 않고 있었던 소설.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문학전집에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앞으로도 가끔씩 이런 유명한 옛 소설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식을 쌓는 측면에서도 좋았지만, 소설 자체도 재미있었다. 이야기의 진행도 흥미진진했지만, 대화나 묘사들도 퍽 생동감있게 머릿속에 상상이 되었다. 한때 행복한 시절을 만끽하다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걸어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것들을 꽤나 현실감있게 대리 경험하는 기분을 느꼈는데, 생동감 있는 글이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영화화도 많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아래는 소설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
한편 샤를르는 자기가 왜 베르또에 다니는 게 기쁜지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또 생각하더라도 아마 병이 그만큼 중했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돈벌이가 된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농가에 자주 가는 게 그의 시시한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으로 된 것이 과연 그런 이유만이었을까? 왕진하는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바로 문 앞에서부터 말을 급히 달리게 했고, 서둘러 말에서 내리면 풀에 구두를 문질렀고, 안에 들어갈 때는 꼭 검은 장갑을 꼈다. 그렇게 하여 그 집 뜰에 들어갈 때 문을 어깨로 미는 느낌이 즐거웠다. 담 위에서 수탉이 울고, 하인들이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도 기뻤다. 곡식 창고도, 마구간도, 또 나의 은인이라고 부르며 그의 손바닥을 때리듯이 잡아 주는 루오 노인도 좋았다. 깨끗이 닦은 부엌 바닥을 걸어다니는 엠마 양의 작은 나막신 소리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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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 씨,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샤를르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머리속 말을 꺼내봐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십니까!”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루오씨……. 루오씨…….” 샤를르는 더듬거렸다. “나로선 분에 넘칩니다. 그 아이도 물론 나와 똑같은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봐야죠. 어쨌든 잠시 머물러 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좋다는 대답이면, 내 말대로 하세요, 오늘은 집에 오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그밖에도, 아무튼 그애가 힘겨워할 겁니다. 하지만 궁금하실 테니까 딸이 좋다고 하면 내가 창문 덧문을 벽에다 붙일 정도로 활짝 열어 놓지요. 생울타리 너머로 보면 집 뒤쪽으로 그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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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엠마는 시골을 너무도 잘 알았다. 가축의 울음 소리도, 젖 짜는 법도, 밭갈이도 잘 알았다. 조용한 생활에 익숙한 그녀는 변화에 마음이 끌렸다. 폭풍우가 있기에 바다가 좋았다. 푸른 초목은 오로지 폐허 속에 듬성듬성 살아 있을 때만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사물에서 자기의 이익을 끄집어 내지 않고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버렸다. 엠마는 예술적이라기보다 감상적인 기질이었으며, 풍경을 찾지 않고 정서를 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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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엠마는 한동안 하인 부리기를 재미있어 했으나, 얼마 안 가서 시골에 싫증이 나고 차차 수도원이 그리워졌다. 샤를르가 처음 베르또에 왔을 무렵, 그녀는 이제 미몽에서 깨어났다. 이제 모든 것을 배웠고 모든 것을 느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에서인지, 혹은 이 남자가 옆에 있음으로 해서 일어나는 혼란 때문인지, 여전히 그녀는 지금까지 꿈꾼, 그 장미빛 큰 날개를 퍼덕이며 시적인 창공을 날으는 새와 같은 그 멋진 정열이 드디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서도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조용한 생활이 자기가 항상 꿈꾸어 온 그 행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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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갖가지 일에 뛰어나며, 정열의 힘과 세련된 생활과 모든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안내자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희망도 없었다. 그는 아내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이 끄떡도 않는 침착성, 조그만 불안도 없는 우둔함, 그리고 자기가 남편에게 주고 있는 행복까지도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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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엠마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이론에 따라 사랑을 느껴 보려고 애썼다. 뜰에 나가 달빛을 받으며 외고 있는 정열적인 싯구들을 죄다 남편에게 읊어 보이기도 하고, 구슬픈 곡을 느릿하게 한숨 섞어가며 불러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고 난 뒤에도 그녀의 기분은 여전히 냉정했고 샤를르 또한 조금도 사랑을 자극받거나, 감동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리하여 남편의 가슴에 부싯돌을 쳐 보아도 불꽃 하나 튀게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 그리고 자기가 경험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함을 깨달으면, 형식을 갖추지 않은 그 무엇도 믿으려 하지 않는 그녀였으므로, 샤를르에게는 놀랄만한 극적인 정열이 전혀 없다고 스스로를 깨끗이 단념시켜 버렸다. 그가 흥분하는 것은 규칙적이었다. 일정한 때가 되면 그녀를 안았다. 그것은 다른 많은 습관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정한 저녁식사 뒤에 반드시 나오는 디저트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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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는 동안 레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바리 부인이 앉아 있는 의자의 가름나무에 발을 올려 놓고 있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푸른 빛 비단 스카프를 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동그랗게 주름잡힌 아모포 깃을 마치 원형 깃처럼 똑바로 세워 놓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적마다 턱끝이 깃 속에 살짝 묻히기도 하고 아름답게 드러나기도 했다. 샤를르와 약제사가 한가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엠마와 레옹은 이렇게 서로 가까이 붙어앉아 막연한 대화 속으로 잠겨 들기 시작했다. 이런 대화에서는 무심코 한 말이 실마리가 되어 언제나 서로 공감하는 핵심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파리의 흥행물, 소설 제목, 새로운 카드릴 댄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교계, 그녀가 살던 또스뜨, 그들이 지금 있는 용빌르,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온갖 것을 함께 음미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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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자기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연애란 천둥과 번개처럼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하늘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생활을 뒤엎고, 인간의 의지를 나뭇잎처럼 찢어발기고, 사람의 마음을 몽땅 깊은 못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엠마는 믿고 있었다. 그녀는 지붕의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안전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벽에 틈이 생긴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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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만 남았다. 보바리 부인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댔다. 레옹은 손에 든 모자로 가볍게 허벅지를 치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아요.” 엠마가 말했다. “외투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녀는 턱을 숙이고 이마를 앞으로 내밀며 얼굴을 돌렸다. 햇빛이 대리석 위를 미끄러지듯 그 얼굴 위를 흘러 눈썹의 곡선을 뚜렷이 드러냈다. 엠마가 눈 앞의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마음속 깊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레옹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녀는 얼른 얼굴을 들었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들은 서로 앞으로 다가섰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망설였다. “그럼 영국식으로.” 그녀는 억지로 웃으면서 자기 손을 청년에게 맡겼다. 레옹은 자기 손가락 사이에 그녀 손의 감촉을 느꼈다. 그러자 자신의 온 존재가 촉촉한 여자의 손바닥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손을 폈다. 두 사람의 눈이 다시 마주치고, 그는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