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하지않는 디자이너 (Aug 27, 2011)
오랜만에 가슴을 꿈틀하게 하는 책을 읽었다. 지식을 주는 책이 아니라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훈계나 자아반성같은 내용일 줄 알았는데, 나가오카 겐메이. 지은이는 제목과 걸맞는 긍정적인 일들을 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들이 나에게는 다 좋아서, 한 권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몇가지 이야기-
16일의 일기를 읽은 빌딩의 오너 마쓰모토씨가 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승낙을 얻지는 않았지만, 요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어서 그대로 옮긴다.
-일전에 나가오카 씨가 ‘지금의 시대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을 때는 말하지 않았는데, 정보량이 옛날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경험한 것과 머릿속에 정보로 들어 있는 것을 혼동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구하고 마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젊고 경험도 없으면서 들은 말만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시대인 것입니다.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 시작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나가오카 씨의 회사에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오고 싶었던 스무 살의 신입이 막상 회사에 들어와서는 나가오카 씨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 17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그 시점에서 그만둬버립니다. 자신이 직접 해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읽고 행동하는 젊은이가 많 아지고 있습니다. 내 회사에도 서른 살 정도의 스태프들이 일의 내용은 나와 거의 비슷한데도, 어떤 문제나 자신의 정보에 없는 사건이 일어나면 패닉상태가 되어 다른 사람이나 회사를 탓하며 바로 도망치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집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야말로 스스로 해결하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인데 말입니다.-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 분명히 마쓰모토 씨의 이 지적은 나의 상황과도 꼭 들어맞는다. ‘젊은이들이여, 힘을 내라. 나도 힘을 낼 테니까.’ 그리고 함께 힘차게 나아가자. 어디로? 그것은 나도 모른다. p.120-121
이야기를 바꿔서, 프로라는 것은 무엇인가. ‘프로’라는 건 ‘현장’이 있어야만 성립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8년째를 맞이하는 디자이너 인생을 뒤돌아보았다. ‘프로’를 의식하며. 가수의 예를 들면 ‘무대’와 같은 ‘일터’가 있다. 그곳에서 100퍼센트 아니 150퍼센트의 실력을 내지 않으면 프로라고 부를 수 없다. 질질 끌며 ‘언젠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겠죠’라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장소’로서 ‘일터’를 인식하고 있어서는 ‘프로’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미술대학의 학생과 다르지 않다.
프로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온힘을 다 쏟아 결과를 남기고, 그 밖의 시간은 취미나 미술 감상, 지인의 전시회를 다니거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즉, 프로는 아마추어 디자이너와 시간 배분에 대한 의식이 전혀 다르고 여가로 사용하는 시간 역시 작품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살리고 있는 셈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흉내를 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잇다.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 나가 전람회의 공간구성을 체크, 점심에는 관계자와 협의하면서 런치, 오후에는 잡지 취재가 몇군데 있고 겨우 메일을 체크한다. 저녁 일곱 시부터는 지인의 전람회 오프닝 파티에 출석, 그 후에는 술자리가 계속. 그러나, 그러나이다. 아마추어 디자이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은 확실하게 ‘개성적인 디자인’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프로’는 아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꺼내 무대로서의 현장에 확실하게 발표해가는’것이 프로다. 한정된 개인적인 시간이나 뜻밖에 생긴 짬에, 머리에 기록해둔 자극의 단편들을 해석과 함께 순간적으로 연결한다. 센스와 스피드와 타이밍. 그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다른 점이다. p.185-186
현대는 비주얼의 시대다. 그림 없이 소리만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CD의 재킷 디자인에도 열을 올린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직면’하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스케치처럼 ‘그것밖에 없는 것’, ‘그 장소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 통신의 발달이나 카피나 복원 기술의 진보로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이 특정한 장소에 없어도 뭔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버추얼 리얼리티.’
그러나 이런 생각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은 진품이나 본인이 없어도 본인을 느끼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은가. ‘얼마나 감동적인가!’라고 현대사회의 확인을 요구받으면서 ‘이것이 감동이다’라고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사실 본인은 감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미래는 ‘버추얼’과 같은 사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버추얼’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목소리가 남는다’라는 것에 과잉 반응한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리얼이라고 한다면, 그곳에 있는 마음에 가깝다는 것은 더욱 리얼에 가깝다. 그것은 DVD나, 더욱 정밀해진 하이비전(아날로그 방식의 고선명 텔레비전 시스템)으로도 전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 공기감을 기록하는 최선의 방법은 ‘소리의 기록’밖에 없다는 것을…. DVD같이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기록한 것은 실은 ‘위조품의 낡은 리얼(영상)’이라고. ‘현실에 가까운 리얼(소리)’이 곤혹스럽게도 별개의 것이 된 상황에서, 아마 보통 사람도 얼마간은 나와 같이 느낄 것이다. 오카모토 다로씨의 목소리 CD가 옜날에 나왔었다는 정보를 떠올리고 고생 끝에 간신히 손에 넣었다. 들어보면 확실하게 오카모토 다로 씨의 목소리다. 그러나 아무 감동도 없다. 왜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이 기획을 진행하기 전에 계속 고민했다. 요시오카 도쿠진씨의 목소리를 테스트로 수록할 때 번쩍, 하고 눈앞이 밝아지며 그 의문이 풀렸다. ‘대화하는 상대의 숫자’가 문제다. 오카모토 다로 씨의 CD는 아마도 수백 명을 앞에 두고 하는 강연의 강단에서의 마이크 수록. 그것으로는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 수만큼 옅어지고 만다. ‘비전 더 보이스(VDV)’는 기록자가 한 명. 그러므로 CD를 듣고 있으면 그들의 이야기가 듣는 사람을 향해서 제대로 전달된다. p.208-210
총무 담당으로부터 ‘연하장 리스트를 보내주세요’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내고 있는 리스트는 언제적 것인가. 그런 반성도 포함해서,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다. 리스트를 재점검하자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매년 새로운 만남이 있고 신세를 진 사람이 생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귄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만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연하장이 1년에 한 번 하는 최소한의 인사가 된다. 그런 ‘마음’을 다잡고 싶기도 했고, 나부터 마음속에서 호가인하고 싶기도 했다. p.217
얼마 전에도 친구에게 추천 받은 하이비전 핸디 캠이 갖고 싶어졌다. 친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화질이며, 아마도 지금까지 봤던 영상이 너무 흐릿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완전히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것을 사서 부지런하게 찍거나 다시 보거나 한 적이 있냐고 물으면, 거의 없다. 1년 전에 구입한 ‘스고로쿠(키워드 검색 기능이 있는 레코더)’도 매일의 검색에서 자동 녹화되는 프로 때문에 용량이 오버가 되어, 녹화하고 싶었던 프로가 녹화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약 1개월 동안 생각한 결과, 하이비전 캠코더는 사지 않기로 했다. 우선 찍을 시간이 없다는 것. 그리고 볼 시간도 없다는 것.
마찬가지로, 디지털 카메라용으로 고화질 프린터가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프린트할 일이 있으면 프린터 숍에 가지고 가는 것이 제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집’안으로 너무 많이 가지고 오는 듯하다. 극장에 가지 않고 홈 시어터, 콘서트에 가지 않고 서라운드 시스템, 사진 프린터도 집의 프린터에서.
도대체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무엇에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러자 나의 경우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행동이 없다. 그것이 매우 신경이 쓰여서,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말자고 의식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는데도, 아직도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집착하고 있다. 파일링을 해도 결국 보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사도 결국 읽을 시간이라고는 거의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매우 게을러진다고나 할까, 늘 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업무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시간은 있지만, ‘점심을 먹는다’ ‘책을 읽는다’ ‘티비를 본다’ ‘목욕을 한다’ ‘외식을 한다’ ‘콘서트에 간다’와 같은 일상은 방치하면 꽤 보기 싫은 것이 된다. 그것이 싫어서 ‘외식을 하러 간다면 최상의 레스토랑을’이라는 느낌으로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르는 파일’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p.260-262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멋짐을 지향하지 않는 것’이다. 디자인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나 지방자치체가 한느 일은 어쩔 수 없이 ‘멋짐’이 목표가 된다. 유명한 지식인, 대학교수, 경연대회 형식, 저명 건축가, 충분한 예산획득, 훌륭한 건물…. ‘담당하는 인간의 감성’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으로 온통 만들어져 있다. 그 ‘알기 쉬움’이 옳다면 괜찮지만, 죽 훑어만 봐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멋진 ‘디자인 센터’를 충분한 예산으로 모두 알고 있고 누구도 불만이 없는 행동 방식으로 멋진게 세운다…. 신축한 건물의 개장을 알리는 첫 번째 전시회는 대단하다. 또는 계획되어 있는 연 4회의 기획전만은 호화롭게. 그러나 연간의 대규모 개최 이외에 그 이후의 일정은 참담하다. 일본에는 그런 시설이 많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사 이동에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장소가 되며, 목적도 알 수 없는 건물이 되어버린다.
이야기를 돌리면, 나는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구나, 라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미에현을 방문하여 그 지방의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니,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단숨에 머릿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먼저, 나라의 보조금 등은 기대하지 않는, ‘디자인을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만드는 장소’가 이곳에 필요하다. 거기에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해답이 아니라, ‘디자인은 이런 것’이라는, 모든 사람들의 최대공약수로서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적욕하고 또 그것을 테마로 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의 에센스를 적용시켜야 한다. 왜나하면 지방 사람은 도시의 다양한 물건이나 장소를 동경하고 믿고 참가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를 꿈꾸며 고향을 떠나 지방의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것 또한 현실이므로, 도회적인 요소를 아주 약간만 포함하고 본 지방의 의지를 가진 장소가 47도도후켄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곳을 축으로 하여 지방의 디자인 문제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최근에 그것을 ‘NIPPON VISION’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D&DEPARTMENT라는 도쿄 에센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27-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