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in the air (Dec 13, 2016)
영화 Up in the air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보고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늘 내용과는 비껴간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무, 나무의 나이테가 생각났다. 일종의 번뜩이는 깨달음이랄까. 나무는 매 년, 정확히는 사계절을 거칠 때마다 나이테가 생긴다. 사람은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이 말하는 나이라는 것이 그것과 같은 거겠지. 사람도 각자의 마음에, 혹은 정신에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 같다. 나무가 그렇듯. 그렇더라도 겉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하는 것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더 크게 자라나고 가지를 뻗고 잎들을 키워가고 뿌리를 뻗어나가고.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가고, 그렇게 스스로 가꿔간 자신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소용없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므로 억울해 해봐야 결국 도돌이표다.
십대는 걱정 없이 활기차게 그 안의 세상을 즐기고 배우는데 가장 좋았고, 이십대는 새롭게 펼쳐진 세상을 마음껏 누비고 일탈을 하기에 가장 좋았고, 삼십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그 삶을 즐기고 힘들어하고 깨닫고 그런 일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깨우쳐가는데 좋다. 나만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이긴 하다. 그 삼십대의 가운데에서는, 거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내가 요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사십대에 다시 되돌아보면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는 것을.
영화에서는 17년을 일한. 25년을 일한 직원이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17년이라. 나는 한 직장에서 그렇게 일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폭풍 속에서는 불가능 할 것만 같다. 언젠가는 폭풍이 그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폭풍속을 계속 헤쳐가야 한다면 내가 성장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럼 나는 그 폭풍을 즐기고,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회사의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함께 겪는 1년차의 후임, 나는 그 나이 때 눈이 오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가을에는 공부 안하고 학교를 산책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장마 때는 우산을 쓰고 빗물 고인 웅덩이를 차박차박 걸어다녔다. 과연 나는 이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이겨낼 정도의 나이테를 쌓았나?
라고 생각을 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