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켜지 않은, 고요한 오후. 냉장고에 남아있던 와인을 따라 마시며, 아까 사 온 파이프담배 연초 잎을 꾹꾹 눌러 불을 붙여서 쉬익-쉬익- 하며 담배를 피우며 소설을 읽는다. 여름의 빌라 단편집 중, 흑설탕 캔디. 그리고 언제나 이럴 때면 엉뚱한 생각이 나듯, 인도에서의 기억이 난다. 한겨울이지만 보일러 때문에 따뜻해진 집안과 바깥에서 들어오는 적당히 밝은 빛, 조용한 집안, 담배연기는 아무런 걱정이 없던 인도에서의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계속 되었던 인도의 여름, 주말에는 딱히 할일이 없어 근처 산책을 하거나 힌두교 사원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가끔씩, 10층쯤 되었던 아파트의 베란다에 앉아, 공항 면세점에서 사온 글랜피딕 위스키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을 몇 개 넣고, 이쁜 빛깔의 위스키를 채우고 베란다로 간다. 일단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받이가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적당한 자리에 두고 앉는다. 위스키가 담긴 유리잔과 담뱃갑, 라이터, 재떨이, 이북리더는 한 의자에 두고 다른 의자에 내가 앉는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인도에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한낮에도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다. 덥고 메마른 바람에는 먼지들이 꽤나 섞여 있었고, 그렇게 더운 바람을 맞으며 고층에서 메마른 동네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생경한 경험들이었다. 책은 총,균,쇠. 가끔씩 소설도 조금씩 읽었지만,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총,균,쇠는 한국에서보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위스키를 마시며 베란다에 있으면 감상에 빠지는 일이 더 많기는 했지만 -기타를 치기도 하며- 총,균,쇠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책을 읽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겪게되는 상황들, 스트레스들, 우울함, 잠깐의 즐거움들은 그 책을 읽으면 정말 하찮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인간은 결국 환경에 따라 좌우되며 사는 것의 의미는 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날 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지’ 하며 흥분이 조금 가라앉기도 하는데,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슬픔 같은 것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 또한 환경에 따라 좌우되며, 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어떤 본능적인 것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