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멜론, 피어리스와 프라이데이, 영화와 와인, 에어컨과 구름, 기타와 커피, 음악과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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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와 멜론
떡볶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떡볶이를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제는 알고 있다. 나에게 떡볶이는 매운 떡볶이와 안매운 떡볶이, 그리고 국물 떡볶이와 그게 아닌 떡볶이 정도의 분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특정한 브랜드(혹은 가게)의 떡볶이의 맛을 기억하고 분류하고 선호도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집에서 떡볶이를 해먹을 때에도, 대파와 양배추, 청경채 등을 함께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던가, 다른 아무것도 넣지 않고 대파만 넣는 것을 좋아한다던가, 아주 맵지 않아도 달달하고, 조금 더 졸인 떡볶이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기호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나도 이제 가끔 집에서 떡볶이를 해먹는다. 친구들로 인해 새로운 지식을 쌓고, 경험을 하게 되었다. 떡볶이가 맛있다는 칭찬은 좋다. 비록 나는 밀키트를 냄비에 쏟고 대파를 넣고 많이 졸인 것 뿐이지만. 멜론은 원래 후식이었지만, 떡볶이만 먹기는 아쉬워서 멜론도 잘랐다. 살면서 멜론을 잘라본 횟수도 아직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하지만 내가 멜론을 자르는 실력은 좋은 것 같다. 슥슥, 내가 봐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떡볶이와 함께 먹은 멜론은 정말 맛있었다. 왜 지금껏 과일을 잘 안먹었을까.

피어리스와 프라이데이
들여온지 두달 쯤 된 피어리스는 온지 몇 주 만에 한쪽 잎이 다 말랐다. 답답한 실내에서 햇빛을 너무 직접 받은 탓일까. 그래서 집 안쪽으로 옮겨주었다. 마른 잎은 아직 그대로지만, 머리 꼭대기에 새로운 잎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식물들은 말이 없고, 힘겨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새 잎을 틔운다. 몸짓으로라도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프라이데이는 의사표현을 많이 했다. 몸집이 작을 땐,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모니터 뒤를 지나 모니터 아래에 엎드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놀아달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을 툭툭 쳤다. 내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허벅지 위에 올라와 엎드려 함께 있어달라고 했다. 내가 퇴근을 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으면 몸을 세워 나를 만지려고 팔을 허공에 뻗고는 했다. 역시 프라이데이가 없는 집은 아직 허전하고, 프라이데이 때문에 혼자 있는 집은 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와 와인
친구와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를 보며 와인을 마셨다. 친구는 기대를 하며 보았고, 나는 혹평들을 좀 들었던 터라 기대 없이 봤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서로의 감상은 각자의 예상과 반대가 되었다. 혼자 보면 조금 지루했을 것 같은 영화였는데 친구와 함께 보니 이야기 할 꺼리가 많은 영화였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발’에 대한 이야기,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이야기, 브래드피트는 역시! 이야기. 감독은 히피를 정말 싫어하나보다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는 히피처럼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에어컨과 구름
비가 온다더니, 비가 오지는 않고 파란 하늘이 잠깐 보였다가 낮은 먹구름들이 끼었다가 다시 밝아졌다가 하는 날씨였다. 그래도 후덥지근한 한여름이라 창문을 열으면 아주 더웠다. 에어컨을 켜고, 아주 밝지도 아주 어둡지도 않은, 아주 덥지도 아주 시원하지도 않은 한낮의 시간을 보냈다.

기타와 커피
그 한낮의 시간에, 더치커피와 찬물을 따르고, 얼음을 하나씩 올린 컵을 들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커피는 시원하고 산미가 있었다. 투명한 컵에 담긴 갈색의 커피는 토요일 오후에 딱 어울렸다. 그리고 울림통 없는 기타를 꺼내어 몇 안되는 기타악보들을 보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코드는 다 몰라도, 스트로크 리듬은 2-3가지밖에 몰라도, 한낮에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치면 즐겁다. 기타를 치다가 틀려도 노래를 부르며 넘어가도 되고,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었다. 인도나 동남아 어딘가에 여행을 온 것처럼, 거기에서 친구와 함께 혹은 방금 만난 여행자들과 즐기는 것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땐 온 세상이 기타와 노래와 함께 있는 사람들만 있다.

음악과 담배
플레이리스트 중에 아무거나 골라서 음악을 틀고, 혹은 가끔씩 듣고 싶은 음악을 틀고, 흥얼거리며 담배를 피운다. 방안에 가득한 음악은 그 당시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것 같다. 그 음악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음악을 들으며 떡볶이를 요리하고 멜론을 자르고, 음악을 들으며 피어리스와 프라이데이를 생각하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구름낀 바깥의 습한 공기를 느끼고,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 스티비원더의 Lately를 들으며,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의 가사를 따라부르며 음악으로 채워진 시간과 공간 속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