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쓸 생각하기 (Mar 21, 2025)
예전엔 회사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새벽,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데 옆에 있던 구글 홈허브에 예전에 찍었던 사진이 나왔다.
일을 할 시간이지만 놀러가고 싶은 마음 가득 사진.
지금은 잘 시간인데 잠도 못자고 있는 처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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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쓸 생각하기
어쨌든 4월 중순에는 휴가를 쓸 예정이다. 이야기도 끝냈다. 한 달.
그래서 출퇴근 길이나 담배를 피울 때 휴가 쓰면 뭘하나… 생각을 하지만 잘 정리되지 않는다. 역시 P라서.
한 달 동안 집에만 있어볼까, 하지만 너무 아까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한 달 동안 제주도를 갈까, 하지만 제주도는 혼자 가기엔 숙소도 밥도 비싸고, 이제 게스트하우스도 못갈 것 같고.
한 달 동안 캠핑을 다녀볼까? 아냐, 며칠이면 질릴거애.
한 달 동안 동남아 휴양지를 갈까, 하지만 지루하지 않을까, 작년도 가고 제작년도 갔는데.
한 달 동안 유럽을? 아니야. 난 머리를 비우고 쉬고 싶은데, 유럽은 부담스러워(언제나 이런 마음만).
한 달 동안 인도를? 바라나시는 약간 끌리지만, 예전과 같은 느낌일까.
한 달 동안 집에 쳐박혀서 뭐라도 열심히 만들어볼까?
한 달 동안 어디든 상관없이 멀리 가서 책만 읽을까?
아니면 한 주씩 쪼개서, 집에도 있고, 제주도 가고, 동남아도 갈까.
이렇게 하나씩 생각하다보면 다시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다시 휴가 생각을 할 때 쯤이면 생각은 초기화가 되어있다.
차라리 휴가가 시작되면 생각해볼까.
그래도 어딘가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인생에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예전 여행의 글을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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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기 위해 뒤적여보기
brunch.co.kr/@sungi-kim/148
…그는 원래 이 동네가 아닌 베트남 중부의 산속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그때까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네를 떠나고 싶어 호치민으로 가서 몇 년간 일했고, 일하던 중 2주 정도 이 곳에서 휴가를 보냈고, 해변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 곳으로 이사와서 다시 자리를 잡고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연인을 만나 1년 뒤에 결혼을 했고, 이제 결혼한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brunch.co.kr/@sungi-kim/133
…제주에 내려온지 19일 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느즈막히 일어나 호스트님도 없는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조금 읽고, 외투를 손으로 빨고 마당에 널어두었다.
세탁기가 있었는데 수도가 잠겨있는 것인지 내가 사용법을 몰라서인지 동작을 하지 않았다. 음, 아이폰으로 Turtles의 Happy Together를 틀고 바지주머니에 넣고, 하는 수 없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열심히 손빨래를 했다. Cranberries의 Dreams를 틀었다면 빨래하는 기분이 좀 달랐을까? 아무튼 이렇게 손빨래를 한게 얼마만인지. 잠깐이마나 무척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빨래를 꽉 짜고, 탁탁 털어서 마당의 적당한 곳에 널어두었다. 오늘은 맑게 개인 날은 아니지만, 저녁까지 많이 마르겠지? 하며.
brunch.co.kr/@sungi-kim/93
…온화한 표정의 사장님은 내가 오면 나시고랭? 이라고 먼저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끝자리로 걸어가면 까만 개는 나를 따라오며 내 발목을 살짝 깨물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BTS를 좋아한다는, 언제나 밝은 미소의 직원은 재떨이를 먼저 가져다주고, 나시고랭을 가져다주고, 망고쥬스를 가져다준다. 까만 개는 내가 밥먹는 동안 내 옆에 앉아 밥먹는 모습을 불쌍히 쳐다본다.
brunch.co.kr/@sungi-kim/58
…조용한 해변가 마을, 창가에서 주황 불빛이 새어나오는 네모네모난 이층 집. 홀로 찾아온 여행객들이 하나 둘 모인다.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태어나 처음 만나 한 식탁에 모여앉는다. 시작은 도란도란 함께 마실 맥주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게임. 아, 조금 늦은 여행객이 도착했다. 내가 주인인 것 마냥 문을 열어준다.
brunch.co.kr/@sungi-kim/6
사박사박 뜨겁게 마른 고운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천천히 긴 해변을 걷는다.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는 망고쥬스 가게에서 달콤한 망고쥬스를 마시며 다시 남쪽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다가 다시 가게에 들러 맥주 한 병을 사고, 바닷물이 닿는 곳을 따라 걷는다.
차박차박 축축하고 고운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돛단배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걷는다. 해가 수평선 근처로 가기 전, 돛단배 하나를 빌려 에메랄드 빛 바다로 나간다. 바닥이 바로 발밑에 있어보이지만 수심이 몇 미터 된다는,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 발끝을 담근다. 돛단배의 출렁임에 맞춰 바다에 닿는 발끝 뒤로 흰 물결이 인다.
brunch.co.kr/@sungi-kim/13
콜카타를 떠나는 밤. 밤기차를 기다리며 역사 앞에 앉아 블루파프리카의 음악을 듣는다. 후덥지근한 날씨, 주황색 불빛, 딱정벌레처럼 생긴 노란 택시들. 역사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면서 저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 어디로들 갈까 생각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이 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사진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brunch.co.kr/@sungi-kim/18
주황색 불빛이 반짝이며 흔들리는 갠지스강의 밤 풍경. 저 멀리 골목에서 나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한 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는 소소한 밤 파티가 한창. 어둑어둑한 옥상 풍경 속에서 모두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재잘재잘. 한 대씩 돌돌 말아서 돌아가며 두 모금씩 후우. 카세트의 음악은 Coldplay, Yellow.
brunch.co.kr/@sungi-kim/24
…요가를 끝내고 사과 하나와 샌드위치를 사서 브라이언트 파크 테이블에 앉았다. 푸른 나무들이 무성하다. 나무에서 내려온 다람쥐들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주변을 서성이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나뭇잎 사이의 햇빛은 반짝이고 뜨겁고 그늘은 시원하다. 할아버지들은 직접 가져온 체스 말을 꺼내어 체스를 두고 있다. 지나가는 할머니는 미소 지으며 내 반팔 티셔츠가 뷰티풀 하다고 얘기한다. 뭐냐고 물어서, 메뚜기라고 답한다. 공원 맞은 편 양쪽 블럭에서는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둔탁한 소리들. 뉴욕은 100년이 지났어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 사이를 지나고 멈춰있는 자동차 소리들. 영락없는 한 여름, 나른한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