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수요일 아침 8시.
차를 타고 이천으로 출근하는 길이다.

출근하는 길에 해가 뜨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산 너머에서 뜨기 직전, 동쪽 하늘과 남동쪽 하늘에서 아주 밝은 빛을 보았다. 금성인가 싶어서 Skyview를 띄워봤는데, 아이폰 나침반이 틀렸는지 금성과는 각도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아이폰이 틀렸을 수도 있고 앱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금성인가, 금성이 이렇게 밝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첫 번째는 남동쪽 하늘에서 봤었는데, 금성이랑 그래도 위치가 비슷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운전을 하며 시선을 돌려 정면을 보니 정면에서도 비슷한 빛이 있었다. 태양계 행성이 그렇게 밝게 빛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정면에 보이는 그 빛을 잠깐 쳐다보다가, 그새 그 빛의 위치가 바뀌었나 싶어서 Skyview를 다시 띄워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잠깐의 몇 초 사이에 빛나던 빛이 사라졌다.

뭘까?

유성은 아니었는데, 그 빛은 그대로 있었는데. 아니면 지구로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유성이었나? 아니면 우주선의 잔재였을까? 인공위성이었을까? 인공위성이라면 그렇게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무슨 일이 나한테 있으려는 것인가 싶다.

그정도 생각을 하고 나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박준 시인의 ‘미신’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올해는 삼재였다

그리고 시의 끝부분에는 점성술 같은 이야기 나왔다. 몇 년째 과학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천문학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이런 빛을, 아주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빛을 보니 나는 결국 과학을 그렇게 신봉하고 듣고 이해하고 하더라도 미신을 밑는 건가,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앞으로는 점점 인공위성도 많아지고 우주선도 많이 띄워질 것이니, 저 하늘위가 밝게 빛날만한 인공적인 일들이 더더욱 많아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나와 같은 경험, 감정, 예전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것들, 소설이나 시에서 표현되던 것들, 미신같은 것들, 경외심이나 아름다움을 느끼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앞으로는 당연히 인공위성이라고 인공적인 어떤 빛이라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그렇게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들, 변화들, 그런 것들로 인해 시간의 흐름속에 희석되고 잊혀지는 것들이 나에게도, 개인에게도, 80년을 사는 사람의 인생 속에도 똑같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는 것처럼, 점점 기억이 잊혀지는 것들도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살면서 느끼는 것들, 특별하거나 사소한 경험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들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슷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유성이 아니라 인공위성일 것이라 생각하듯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별 감정이 들지 않고,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나는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도 든다.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일에 대한 전문성이 생기면 그것에 대한 생각이 더욱 많아지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비슷한 경험을 하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그것에 맞는 생각들을 하는게, 예전에 가졌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것보다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것을 하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게 맞을까?

나는 바뀔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렇게 될까?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해서 이렇게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하고 사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빛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출근길. 쳇바퀴 돌듯 달리는 도로 위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갑자기 그런 빛이, 내가 인공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못하게, 지금 갑자기 하늘을 뒤덮는 유성우가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