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의 시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가을 인사를 한다. 얼마나 멋진지. 일상의 굴곡들은 파도 한번으로 매끈해지는 모래들처럼 느껴진다.

현실 같은 꿈에서 50년을 지냈다면 그건 꿈일까 현실일까. 50년 뒤 깨어난 현실이 더 꿈같지 않을까. 물론, 내가 33년 동안 가끔 꿈을 꿔본 결과, 깨고 나면 꿈의 시간들은 사진 한 장처럼 찰나로 기억된다. 지나간 시간들이 특정 시간 만큼으로 다시 기억되지 않듯이. 비디오를 찍고 다시 보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하룻밤이 지나간다. 이 밤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젖어 맥주를 마실 수고 있고 무언가 만들 수도 있고 인터넷 쇼핑을 할 수도 있고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서비스 기획을 할 수고 있는 이 시간이, 영화 한 편과 함께 끝나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밤이다. 이런 밤에 조형관 7층에 혼자 있었다면,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크게 틀고 주황빛 조명을 켜고 학교, 동산의 밤풍경을 바라봤을 거다. 학교가 내 것 같던 밤들. 아, 담배를 피며.

밤에만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요즘엔 잘 못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그냥 그것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