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정신없이 여름이 지나간다. 오랜만에 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잠깐, 끌림의 한 페이지를 읽으며 적는다.

이야기 스물둘. 끌림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 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면 그 여행 경비는 어떻게 버느냐고 했더니 틈틈이 막노동 일을 하면서 그 수입으로 에펠 탑도 올라가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간다고 말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뭣할 정도로 가는 곳엘 가고 또 가고 하는 사람. 도대체 그가 에펠 탑에 오른 횟수는 얼마이던가.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 올라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외치고 나서 대답처럼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 적은 몇 번이던가. 파리는 정말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빛의 세기에 다라 바람의 결에 따라 한 번 와 닿았던 인상이 전부 다가 아닌,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가 바로 파리다. 수많은 표정을 매일매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그 일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조차 일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청년을 우연히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서 마주친 적 있는데 내가 먼저 알아보고는 반가워 악수를 청했다. 분수에 고인 물로 손을 씻고 있던 그가 얼른 바지춤에다 손을 닦았다. “여행 중이니?” “살고 있는 중이지. 요즘 일이 없거든. 하지만 곧 떠날 거야.” “어디로?” “파리로!”

이 이야기를 읽었던 장소는 아마도 서울시립대 조형관 6층 난간이거나, 서울시립대 21세기관에서 학생회관으로 가는 벤치가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동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주황 불빛을 받으며, 조용한 학교의 길가에서.

요즘도 학교에서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일들,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는 작업들 사이로 잠깐씩 여유로움을 느낀다. 요즘에는 회사가 있는 건물 6층 옥상공원에서 그렇게 지낸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일하는 곳과 지내는 곳이 떨어지고 이동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유를 즐길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일하는 곳과 지내는 곳에서의 생활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곳에서 여유를 즐길 시간은 딱히 여유롭지 못하고 멍하니 있거나 잠깐 바깥 풍경을 보는 정도가 되고, 지내는곳에서 여유를 즐길 시간은 여유보다는 피곤해하거나 역시 멍하니 보내게 되고 있다.

이러면 안되지.

바쁘고 피곤한 중에도 여유로움은 느껴야지. 깨어있어야지. 낭만을 즐길 수 있어야지. 생각을 할 수 있어야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정신이 맑게 깨어있도록 연습을 조금씩 해야겠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