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송이 같은 첫눈 - 강경애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안 나는지 마치 촛불을 켜대는 것처럼 발갛게 피어오르던 우리 방 앞문이 종일 컴컴했다. 그리고 이따금식 문풍지가 우룽룽 우룽룽 했다. 잔기침 소리가 나며 마을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머니, 어디 갔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치마폭에 풍겨 들어온 산뜻한 찬 공기며 발개진 코끝. “에이, 춥다.” 어머니는 화로를 마주앉으며 부저로 손끝이 발개지도록 불을 헤치신다. “잔칫집에 갔댔다.” “응. 잔치 잘해?” “잘하더구나.” “색시 고와?” “쓸 만하더라.” 무심히 나는 어머님의 머리를 쳐다보니 물방울이 방울방울 서렸다. “비 와요?” “비는 왜, 눈이 오는데.” “눈? 벌써 눈이 와. 어디.” 어린애처럼 뛰어 일어나자 손끝이 따끔해서 굽어보니 바늘이 반짝 빛났다. “에그,, 아파라, 고놈의 바늘.”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옥양목 오라기로 손끝을 동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송이로 뽀하다. 그리고 새로 한 수숫대 바자갈피에는 눈이 한 줌이나 두 줌이나 되어 보이도록 쌓인다. 보슬보슬 눈이 내린다. 마치 내 가슴속가지도 눈이 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깨끗하게 한다. 무심히 나는 손끝을 굽어보았다. 하얀 옥양목 위에 발갛게 피가 배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이런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싸늘한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디를 특별히 바라보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았다. 꽃송이 같은 눈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신동아』, 193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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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시원한 이야기. 정지용

그날 밤 더위란 난생처음 당하는 것이었다. 새로 한 시가 지나면 웬만할까 한 것이 웬걸 두 시 세 시가 되어도 한결같이 찌는 것이었다. 설령 바람 한 점이 있기로서니 무엇에 쓸까만 끝끝내 바람 한 점이 없었다. 신을 끌고 나가서 뜰 앞에 선 나무 밑으로 갔다. 잎알 하나 옴칫 아니 하는 것이었다. 옴칫거리나 아니하나 볼까 하고 갸웃거려 보았다. 죽은 고기 새끼 떼처럼 차라리 떠 있는 것이었다. 나무도 더워서 죽은 것이었던가? 숨도 막혔거니와 기가 막혀서 가지를 흔들어 보았다. 흔들리기는 흔들리는 것이었다. 마음이 적이 놓이는 것이었다. 참고 살기로 했다. 아무리 덥다 해도 제철이 오고 보면 이 나무에 새로운 바람이 깃들 것이겠기에!

『정지용전집』, 민음사, 1988에서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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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김동인

무슨 글자를 보느라고 옥편을 뒤적이다 별 성星 자를 보았다. 성 자를 보고 생각하는 동안 문득 별에 대한 정다움이 마음속에 일어났다. 별을 못 본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별의 빛깔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보려면 오늘 저녁이라도 뜰에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보면 있을 건이건만.

밤길을 다니는 일이 적은 나요, 더구나 밤길을 다닌다 하여도 위를 우러러보는 일이 적은 데다가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전등불이 휘황찬란한 도회지에 사는 탓으로 참 별을 우러러본 기억이 요연하다. 물론 그 사이에도 무의식적으로 별을 본 일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을 본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고 보았겠는지라 별을 의식한 기억이 까마득하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여름날 뜰에 누워서 목청을 높이며 세어 나가던 그 시절의 별이나 지금의 별이나 변함은 없을 것이며 그 뒤 중학 시절에 음울한 소년이 탄식으로 우러러보던 그 시절의 별이나 역시 변함은 없을 것이며, 또한 그 뒤 장성하여 시적 흥취에 넘친 청년이 마상이를 대동강에 띄워 놓고 거기 누워서 물결 소리를 들으면서 찬미하던 그 별과 지금의 별이 변함이 없으련만. 그리고 그 시절에는 날이 흐려서 하루 이틀만 별이 안 보이더라도 마음이 초조하여 마치 사랑을 따르는 처녀와 같이 안타까워하였거늘 지금 이렇듯 별의 빛깔조차 잊어버리도록 오래 별을 보지 않고도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이 심경은 어찌 된 셈일까.

세상만사에 대하여 이젠 흥분과 감동을 잊었나. 혹은 별을 보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만큼 현대인의 감정이란 빽빽하고 기계적인 것인가. 지금도 별을 우러러보면 옛날의 그 시절과 같이 괴롭고도 즐거운 감동에 잠길 수가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전등만큼 밝지 못한 것이라고 경멸해 버릴 만큼 마음이 변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오늘 저녁에는 꼭 다시 별을 우러러보려 한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도 그냥 이 마음이 그대로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날이 춥다는 핑계가 있고, 바쁜 원고가 많다는 핑계가 있고, 그 위에 오늘이 음력 팔일이니 그믐 별이 아니고야 무슨 흥취가 있겠느냐는 핑계도 있고 하니 어찌 될는지 의문이다.

보면 새고 안 보면 문득 솟아오르던 별. 저 별은 장가를 가지 않는가하고 긴 밤을 지키고 있던 별. 내 별 네 별 하며 동생과 그 광휘를 경쟁하던 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언제 다시 잠 못 자는 한밤을 별을 우러러보며 새우고 싶다. 그러나 현 시대의 생활과 감장이 너무 복잡다단함을 어찌하랴. 별을 쌀알로 보고 싶을 터이며 달을 금덩이로 보고 싶을 테니까 이런 감정으로는 본다 한들 아무 감흥도 없을 것이다.

1935.2.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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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독거기 - 나혜석

나를 그토록 위해 주는 고마운 친구의 집 근처, 돈 이 원을 주고 토방을 얻었다. 빈대가 물고 벼룩이 뜯고 모기가 갈퀸다. 어두컴컴한 이 방이 나는 싫었다. 그러나 시원하고 조용한 이 방이야말로 나의 천당이 될 줄이야.

사람 없고 변함없는 산중 생활이야말로 싫증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삼 년 째 이런 생활에 단련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내 기분을 순환시키기에는 넉넉한 수양이 있다.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책보기, 울가에 평상을 놓고 거기 발을 담그고 앉아 공상하기, 때로는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기, 바위 위에 누워 낮잠 자기, 풀속으로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가경을 따라가 스케치도 하고, 주인 딸 동리 처녀를 따라 버섯도 따러 가고, 주인 마누라 따라 콩도 꺾으러 가고, 동자童子 앞세우고 참외도 사러 가고, 어치렁어치렁 편지도 부치러 가고, 높은 베개 베고 소설도 읽고 전문 잡지도 보고, 뜨뜻한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원고도 쓰고, 촛불 아래 편지도 쓰고, 때로는 담배 피워 물고 희망도 그려보고, 달 밝거나 캄캄한 밤이거나 잠 아니 올 때 과거도 회상하고 현재도 생각하고 미래도 계획한다.

고적孤寂이 슬프다고? 아니다. 고적은 재미있는 것이다. 말벗이 아쉽다고? 아니다. 자연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평온무사하고 유화柔和한 성격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촌사람들은 내가 사람 좋다고 저녁 먹은 후에는 어린 것을 업고 옹기종기 내 방 문 앞에 모여들고, 주인 마누라는 옥수수며 감자며 수수 이삭이며 머루며 버섯을 주워서 구메구메 끼워 먹이려고 애를 쓰고, 일하다가 한참씩 내 방에 와 드러누워 수수께끼를 하고 허허 웃고 나간다.

여기 말해 둘 것은, 삼 년째 이런 생활을 해본 경험상 여자 홀로 남의 집에 들어 상당히 존경을 받고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지내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자 없는 독신 여자라고 소문도 듣고 개미 하나도 들여다보는 사람 없는, 젊도 늙도 않은 독신 여자의 기신奇身이랴.

우선 신용 있는 것은 남자의 방문이 없이 늘 혼자 있는 것이요, 둘째로는 낮잠 한 번 아니 자고 늘 쓰거나 그리거나 읽는 일을 함이요, 셋째로 딸의 머리도 빗겨 주고 아들의 코도 씻겨 주고 마루 걸레질도 치고 마당도 쓸고 때로는 돈푼 주어 엿도 사먹게 하고 쌀도 팔아오라 하여 떡도 해먹고 다림질도 붙잡아 주고 빨래도 같이하여 어디까지 평등 태도요 교驕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때때로, “가시면 섭섭해 어떻게 하나.” 하는 말은 아무 꾸밈 없는 진정의 말이다. 재작년에 외금강 만산정에서 떠날 때도 주인 마누라가 눈물을 흘리며 내년에 또 오시고 가시거든 편지하세요, 했으며 작년에 총석정 어촌에서 떠날 때도 주인 딸이 울고 쫓아 나오며, “아지매 가는 데 나도 가겠다.”고 했고 금년 여기서도, “겨울 방학에 또 오세요.” 간절히 말한다.

오면 누가 반가워하며 가면 누가 섭섭해하리, 하고 한숨을 짓다가도 여름마다 당하는 진정한 애정을 맛볼 때마다 그것이 내 생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면서도 공연히 기쁘고 만족을 느낀다.

- 『삼천리』 193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