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역시나 비슷한 문고본의 사이즈. 역시나 흥미진진하고 빨리 읽히는 소설. 덥지 않은, 해질녘의 저녁동안 조형관 6층 옥상공원에서 3일간의 여유를 오늘 마쳤다. 재미있는 설정과, 이쯤에서 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해도 일어나지 않는 사건. 몇장을 남기지 않고서, 이쯤에서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해도 일어나지 않는 반전. 하지만 내내 흥미진진했던 내용. _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읽을까 말까 하다가 읽었는데,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진정한 휴가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 그런 휴가에 어울릴 만한 작품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라는 옮긴이의 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올라프가 골라준 이름은 뭐였나요?” “말씀드리지 않을래요. 당신의 상상력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하는 척했다. 화방에서 색깔 견본 카드를 앞에 두고 고심하는 사람처럼. 그녀는 그런 식으로 관찰당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일생에 딱 한 번, 그것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것이리라. 이름이 주어지는 그 순간을. 사실, 이름은 이미 골라놓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거의 본능적으로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이젠 너무나도 친숙한 그 이름을 일찌감치 붙여놓았다니, 내가 그녀의 소망을 미리 감지한 걸까. “지그리드.” “지그리드.” 그녀가 감탕해 마지않으며 그 이름을 따라 불러보았다. “예쁜 이름이에요.” p.78

부엌으로 내려가니 건포도 빵 한 봉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변덕을 부리는 대로 다 받아들여지는 꼬마가 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그리드의 메모가 나의 기쁨을 더했다. <이 빵이="" 마음에="" 드셨으면="" 해요.="">라는 한 문장은 어제 크루아상에 곁들여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지만 마치 새로 차린 아침식사처럼 신선해 보였다. p.120

“때가 때이니만큼, 몸매 걱정은 잊을 것 같은데. 안그래요?” 지그리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죽는 날 가벼운 몸으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는걸요.” 만일 내가 지그리드를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말 때문에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으리라.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