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예술의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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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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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중간중간 스크랩할 글들을 체크했어야 했는데, 매번 전철에서 읽다보니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다시 정리해볼 시간이 없어, 마지막 부분에 읽었던 내용들 몇 부분만이라도 적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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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페니 Simon Penny

… ‘컴퓨터가 그저 중립적 수단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안에는 정보, 지식, 또는 재현의 본성에 관한 특정한 관념이 내재되어 있는가?’ 기술이 그저 원래의 사용영역에 머무르는 한, 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기술적 상황에서 이 기술은 끊임없이 사회와 문화를 가로질러 움직이면서, 도구주의적 패러다임(과 거기에 관련된 가치들)과 별 관계가 없는 다양한 종류의 확립된 실천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개발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전체적인 신체 몰입에 대한 꿈은 기술자들을 사로잡은 꿈이었지요. 그것은 마법이 아닙니다. 사실 자리에 앉아 조그만 스크린을 들여다 보는 것이 훨씬 더 몰입적일 수 있고, 값도 훨씬 싸지요. 1990년대의 가상현실 기술은 공룡과 같아요. 그들은 특정한 환경에 적응했지만, 더 작고 효율적인 종이 나타나 그들을 퇴물로 만들어버렸지요. 게임들은 쥐와 같고, 가상현실 환경은 스테고사우르스 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작은 쥐들이 훨씬 더 성공적이었지요. ….

… 아시다시피 우리 서구의 원근법적 지각은 우리가 강력한 관찰자 시점의 권위를 갖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오직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세계의 아주 작은 단면을 취함으로써만 원근법적 재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이는 미술사에 나온 일종의 기술적 논증입니다. 하지만 미디어아트에서는 이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체험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죠. 원근법적인 대상-관찰자의 위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관조적인 지각 패러다임도 마찬가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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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이 있는 책이다.
한예종 미래교육준비단에서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 ‘isAT 2008’에서 열렸던 강연과 인터뷰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발표를 진행한 각각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만나 인터뷰한 여러 질문들과 대답들을 묶어놓아 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내용이었다.
책의 한 반 정도는, 용어들이 너무 전문적이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쉬운 말로 대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인터뷰의 내용이라 그런가…  
[….. 우리는 이미 세컨드라이프의 현존이 평행우주나 평행실존으로 변형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 비디오게임의 미래가 가진 흥미로운 측면은 진정으로 국제적인 온라인의 현존에 내재된 사회적이고 문화횡단적 가능성들에 있습니다 …..]
뭐 이런식의 이야기들.
그래도 딱딱한 이론서 보다는, 이 책을 읽으니 미디어아트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은 흥미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