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순서는 이렇다.

  1. 현관의 중문을 열면 뛰쳐나온다. 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 부르면 다시 뛰어 들어온다.
  2. 가방을 내려두고 바닥에 앉아 손을 뻗고 있으면, 그르릉거리며 한바퀴 돌고 손에 자기 머리를 갖다댄다. 그 뒤로 계속 그르릉- 쓰담.
  3. 간식을 주고 재빨리 화장실 문을 닫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언제나 문 밑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문이 닫히면 일어나서 물 묻은 내 발을 햩기 시작한다.
  4. 밥을 차리고 먹는 동안, 계속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책상위를 슬금슬금 돌다가 다시 돌아와 냄새를 맡고, 나는 책상 밑으로 내려놓는다.
  5. 컴퓨터를 하는 동안, 자기 혼자 뛰어다닌다. 어쩔 때는 나비 장난감을 치며 놀고, 어쩔 때는 침대부터 맞은 편 벽의 창틀까지 왔다갔다 하고, 어쩔 때는 카펫 속으로 들어간다. 가끔씩 올라오면 쓰다듬어 주지만 나를 물기 시작한다.
  6. 컴퓨터를 하는 동안,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책상 위 담요에 앉아 한숨 잔다. 가끔 번뜩 일어나 그루밍을 하고 다시 잔다.
  7. 스타를 하는 동안,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의 공간에 옆구리를 깔고 누운 다음 나를 지켜보다가, 마우스 선을 미친듯이 잡아 챈다. 가끔 키보드 위에서 바쁜 왼손을 문다. 나는 책상 밑으로 내려놓는다.
  8. 스타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조금 하는 동안, 키보드와 나 사이의 공간에 앞다리를 세우고 앉은 다음 나를 신기한듯 쳐다본다. 그러다가 앞발을 하나 들어 슬쩍슬쩍 움직이다가 빠르게 내 볼을 때린다. 나를 신기한듯 쳐다본다. 나도 볼을 때린다.

2019-05-15

요즘 페북이나 인스타에 고양이 영상이 자주 뜨는데, 이런 것들을 보다보면 프라이데이가 그리 이상한 애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들끼리 그러듯 나도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얼굴을 때리거나, 다리를 물거나, 밥 뺏어먹기 등등….

2019-05-09

오늘의 검색어
“샤워를 하고 나오면 고양이가 핥아요”
물론 제대로 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면, 프라이데이가 물 뭍은 내 발을 핥는다.(핥. 왜 이리 어색하지. 왜 아래가 뚫려있는 것 같지)

  1. 집사를 핥아주는 기본적인 애정의 표시이다
  2. 신선한 물이 뭍어있어서 핥는다
    이게 나의 생각이었는데, 평생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을거다.
    이에 대해 심리학과를 나온 회사동료가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는데,
  3. 그렇게나 하기 싫은, 물로 씻기를 오늘도 하고 나왔구나. 내가 위로해줄게
    신박한 생각이었는데, 마냥 엉뚱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가타카라는 영화를 보면, 에단 호크가 자신의 DNA 세탁을 위해 매일 힘겹게 샤워를 하고 각질을 제거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불쌍해 보였다. 프라이데이는 정말 나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2019-05-07

고양이 박사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 고양이가 계속 저를 따라와요
  • 어떤 때는 저를 보고 화들짝 놀라 뛰어 도망가요
  • 혼자서 작은 것들을 툭툭 치며 미친듯이 뛰어다녀요
  • 어떤 때는 아무 것도 없는데 미친듯이 뛰어다녀요(지금이요)
  • 엄청나게 빨리 뛰다가 갑자기 천천히 걷더니 끙끙거려요(아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 말고, 전문가의 조언 뭐 이런거 없나. ‘고양이 끙끙’ ‘고양이가 저를’ … 찾기도 지친다.

2019-05-01

90년대 음악 모음집을 틀어두고, 방 정리를 시작한다. 오늘은 책상 위도 깨끗히 치우고, 바닥도 깨끗히 청소하고, 이것저것 위치를 좀 바꿔볼까? 내친김에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겠다. 먼지가 많이 생길 때는 프라이데이 간식을 화장실에 두고 거기로 보내야지. 생각을 했다.
먼저, 책상위의 짐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프라이데이는 방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 책상위에 올라와서 내가 만지는 것들을 자기도 만져보겠다고 계속 따라와서 툭툭 친다. 그러다가 좁은 창턱에 올라가 끝까지 가볼까 하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도 한다. 이 바보야.
잠깐, 파일철에 있는 것들을 책상위에 꺼내 본다. 프라이데이가 내 다리 위에 올라와 갑자기 자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가 없다. 과연 오늘 청소를 끝낼 수 있을까.

2019-04-19

머리가 아파도, 몸살이 나도, 손 관절이 부어올라도 그냥 나아지겠지 하고 살았는데,
고양이한테 눈꼽이 생기거나 재채기를 하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그루밍을 너무 많이 하거나 하면 하나하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게 된다. 원인을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 공기가 안좋았는데 창문을 아주 살짝 열고 가서 먼지나 꽃가루 때문에 그런걸까, 눈꼽을 떼주다가 더 안좋아진걸까, 사료를 아침에 불려서 줬던걸 밤까지 그대로 먹게 둬서 그런걸까, 구석구석 집청소를 안해서 그런걸까. 아까 내가 멀티탭 있는 곳에 못가게 꼬리를 잡아서 그런걸까.
아무튼, 인터넷을 찾아보면 뭐든 질환, 병 의심이다. 아직 어느 정도로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오늘 따라 손바닥이 메말랐는데 그건 독감이다, 재채기를 좀 했는데 심장질환이다, 목이 뻐근해서 오전에 가끔씩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했는데 관절염이다 하는 것 같다.
그래도, 환경에 적응하며 오랜 기간동안 최적화되며 변화된 신체와 기능과 습성들일텐데 그리 쉽게 문제일까. 눈꼽이 낀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먼지 많고 구석구석 낑겨들어갈 곳이 많은 실내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오랜 기간동안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변화된 신체와는 완전 다른 세상일 수 있겠다.
그래도, 오늘따라 품에서 떠나질 않고 왠지 불쌍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는 걸 보니 몸에 문제가 있기는 있나보다. 뭘 할 수가 없다.

2019-04-08

고양이가 내 이불속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 감기에 걸려서, 바닥에 깔 전기요와 이불을 사려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기요는 찾았다. 이불이 문제다. 극세사 이불을 사려고 한참을 알아보는데 2만원대는 상품평 안좋은 것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그렇다고 5-7만원 하는 이불을 사야 하는가. 샀는데 프라이데이가 안좋아하면 어떻게 하나. 한 한시간을 알아보고나서 문득 깨달았다. 내 이불을 프라이데이에게 넘기고 내가 덮을 새 이불을 사면 된다. 삶이 바뀌어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