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network에서 경험의 거리 (Nov 23, 2013)
기사같은 것 말고 이런저런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SNS같은 곳에 공유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경외롭다. 류시화씨의 이야기는 좋다. 경기도에 살고 서울에서 일하는 나는 잘 살고 있나. 아주 가끔 먼 곳에서의 우연한 인연들이 있다. 잘 챙기지는 못하지만. 여행을 가서 만난 외국 친구, 외국에서 만난 한국 친구, 짧지만 함께했던 현지 가이드, 뜬금없이 프랑스어로 이메일을 불쑥 보내 심심할 때 편지하자는 먼 곳의 사람,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먼 곳의 사람…
작은 나라, 그 안의 작은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올리는 자신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신이 읽고 본 것의 링크들. 편지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를 넓혔고, 이메일은 그 공간 속에 있던 시간의 거리를 좁혔다. 스마트폰의 푸시알림은 그 시간의 거리를 없애버렸다. SNS라고 모인 곳에서는 여러 시간, 여러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여러 경험들을 적는다. 나도 그 곳에 뛰어든다.
일이 생길 때마다 적는다, 일이 없을 때마다 본다.
사실, 여러 시간이라도 해도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고, 여러 공간이라고 해도 대부분 몇십킬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거나 가끔 떠나는 여행지가 대부분이다. 그 작은 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과 다양한 시각들. 그 먼 곳에서 전달되는 풍경들.
잦고, 가볍고, 짧고, 많다. 옅다. 익숙해졌다. 먼 곳의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읽고 보는 나도, 잦고, 가볍고, 많다.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 먼 곳의 인식은 옅다. 네팔이라고 하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과 흙길의 골목이 생각나고, 미국은 높은 건물 숲이 생각나고, 프랑스는 루브루박물관이 생각난다. 옅어졌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내가 아는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조금 흥미진진한 경험들을 보게 된다. 에콰도르의 술집에서 브라질 형이 동네 사람 불러내어 춤추고 연주하는데 아마추어 느낌이 아니더라, 동네 사람들이 다 그런가 하는 이야기, 콜롬비아 친구가 동네 친구들 집으로 불러 모아 술마시며 노는 재밌는 이야기, 프랑스 친구가 취미로 하는 육상동호회에서 주말에 달리기 한 이야기, 풍경들. 그 먼 곳은 이런 느낌이구나.
그렇다고 비슷한 공간의 가벼운 경험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일상이니까. 연고가 없으면, 얇은 끈으로라도 엮여있지 않다면, 혹은 짙고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먼 곳의 이야기들은 그냥 사진 속 풍경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냥, 류시화씨의 글을 읽으니, 현재의 SNS 공간이라면, 이 정도로 경험의 거리 차이가 느껴지면서도 와닿는, 멋진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