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여성작가들의 수필 모음집을 읽었다. 100년 전의 사람들, 특히 그 시절 여성들의 생각과 시각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100년 전과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다르겠지만, 그 시절의 언어적 표현(물론 출판사에서 현대어로 번역했다고는 하지만)은 너무 멋지다. 그 당시의 삶도 다르지는 않구나, 그 당시는 한편으론 더 힘들었겠구나, 그 당시는 작은 것에도 정말 깊게 알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편, 강경애 작가의 ‘빨래하는 마음’은 머릿속으로 풍경이 그려지고, 나는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작가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심정과 반짝이는 표현과 묘사로 그 마음이 공감되었다.

눈 오던 그날 밤 - 백신애

…그러나 그녀는 무엇에 취한 듯 자꾸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언니!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동안에 눈이 자꾸 내려서 이 속에 포옥 파묻혀 버렸으면……”
그는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옷 위에 쌓인 눈을 서로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가로등에 펄펄 날리는 눈발이 우리를 눈 속에 파묻으려는 듯 싶었다. 이윽고 함께 걷기 시작하였을 때, 나의 가슴은 이국 정서로 가득해지며 남의 나라를 방랑하는 듯 노스텔지어의 마음이 자못 설레였다.
p.35-36

직장의 변 - 노천명

우리는 절대로 현실적인 생활을 무시하고 함부로 덤벼선 안 된다. 생활을 무시하는 태도가 오히려 무시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내 최저 생활의 확보를 위해서 언제나 즐겁게 “짬”을 가질 각오를 하고 있다.
들뜬 생활, 들뜬 생각이 나는 늘 무섭다. 요새 가만히 보면 들뜬 친구들이 많이 있다. 들떴던 것은 반드시 가라앉게 마련이다. 가라앉는 데 몇 해가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고 들뜬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남을 보고 내 처지를 살펴볼 때면 때로는 아니꼬운 심정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고생하시는 내 은사 몇 분을 생각한다.
p.53

원두막 - 노천명

“백사과나 가지참외는 없어요?”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향 참외 생각이 나서 짐짓 물어 봤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참외는 모름지기 백사과가 그만이다. 잘 익은 백사과는 칼을 댈 때부터 사근사근하게 얼른 받는 것이 남다르다. 유달리 곱게 잘 익은 백사과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입에서 슬슬 녹는다. 그리고 노랑참외, 개구리참외, 별종참외(서울서는 감참외라던가), 가지참외, 청참외도 참 맛있는데 사치스러운 맛임에도 시원하고 계속해서 먹고 싶은 것은 까맣게 익은 청참외일 것이다. 이 없는 할머니들이 숟가락으로 긁어 잡수기에 좋은 건 가지참외다. 노르끄레한 표면에 파아란 줄이 죽죽 간 그 빛깔하며, 유난히 부드러워 보이는 촉감하며, 나는 어려서부터 집에 참외가 들어오면 다른거 다 제쳐놓고 길쭉하고 예쁜 가지참외와 배꼽참외만을 골라내 가지고 번갈아 가며 업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서울서는 가지참외를 볼 수가 없다.
p.71

무던히 보이는 품이 도무지 장사치가 될 사람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나보다 인생을 더 잘 알지도 모른다.
가게에서 며칠씩 시들다 곯아버린 참외나 먹다가 이렇게 갓 따온 싱싱한 것을 원두막에서 시원히 벗겨 먹으니 그 맛이 썩 괜찮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부대끼고 지내느라 신경이 예민해지곤 하였는데 농촌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도 퍽 좋은 것 같아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먹는 걱정 외에는 별 걱정이 없어서 좋겠군요.”
그랬더니,
“먹는 걱정이 그게 작은 걱정 아니죠”
하는 영감님의 태도가 갑자기 철인같이 느껴졌다.
p.72

골동 - 노천명

친구인 G여사에게서 받은 도자기가 한 개 있는데, 나는 이것을 바라다볼 때마다 한 서른쯤 된 청초한 여인을 연상하게 된다. 백자 몸에 돋을무늬로 되어 있는 매화와 대나무를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데, 혹시 이것을 구운 사람이 자기의 그리운 여성이나 혹은 자기의 부인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고려 때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취미에 운치 있게들 살았을까.
p.82

뉘 집엘 가든 구석에 있는 배나무 사방탁자 하나만 보아도 나는 그 집의 주인 얼굴을 자세히 보는 것만 같다. 낡은 탁자 하나가 풍겨 주는 격과 운치는 거추장스럽고 뻔적거리는 새 세간에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그윽한 운치며 은근한 맛, 이 자기들은 똑같은 것을 기계로 빼낸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다 손으로 만든 것이라서 그렇다. 그 하나하나를 한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제각기 다 다르게 생긴 것이 또 재미있는 점이다. 한 사람의 솜씨로 열 개나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다 다른 개성을 지닌 것으로 만들어지지 결코 똑같은 것은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골동에 대한 많은 지식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겠고, 또 값진 자기나 서화만을 만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값싼 것도 좋다. 내가 만져 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루 물을 담았던 조그만 항아리도 좋고 복숭아 모양을 한 벼루그릇도 좋고 또는 시의 한 구절을 써서 구운 분원의 갑반 사기 술병도 좋다. 여기에서 우리가 넉넉히 지녀 온 예술의 혼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p.84

젋은 부부 - 나혜석

나는 옆에서 보다가 속으로, ‘퍽도 사이 좋은 젊은 부부다’하였다.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일러주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인가. 과연 일남일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처럼 Good and Fine(좋고 멋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비밀이 없고, 울 때 같이 울며 웃을 때 같이 웃고, 어려운 때 서로 도우며,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내 몸과 같이 아파하며, 서로의 말은 은연 중 다 듣고 서로가 없으면 무슨 일이든 성사하기 어렵다. 서로가 중하게 간직한 책이자 모든 일의 참고서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이랴. 간간이 말다툼쯤 하면 어떠하랴. 다툼도 그렇게 여러 번 쌓이 ㄴ것 중 싹이 나면 결국에는 아름답고 귀한 것이 된다.
부부 생활에 세 시기를 지내야만 참 아름답고 귀한 것이 된다고 하였다. 첫 번째 시기, 서로 연애할 때는 본능적으로 유혹하게 되어 열과 정이 있어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결혼 당시로 약 1년 반 동안 그러하다.
두 번째 시기, 한 가정 내 한 방구석에서 2년쯤 서로 지내면 차차 결점을 알게 된다. 즉 권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리하여 미보다도 추, 선보다도 악, 장점보다도 단점이 보이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이혼 통계를 보면 결혼 후 2년 혹 3년 된 때가 제일 많다. 그 고비만 넘기면 다시 의식적으로 무엇을 찾아낼 수가 잇다.
세 번째 시기, 결혼 후 2,3년을 지내고 보면 두 사람간에 자녀가 생겨 부득이 떠날 수 없게 되고, 사람도 많이 겪어 보고 하다 보면 세상에는 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개성을 가진 두 자가 만나니 맞을 리가 없다. 서로 양보하여 맞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서로 장점과 단점을 아는지라 총명한 자는 여기서 상대방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보는 데에 힘쓸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만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끼게 되면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으며, 이에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 또한 어디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도 한 번 배우고 체험하고 헤아려 이처럼 아름다운 생활을 해볼 생각이 없는지.
p.106-107

프랑스 가정은 얼마나 다를까 - 나혜석

이 집 주인은 50세 정도 되었으나 아직도 건장하고 부인은 다상한 만큼 생기가 넘친다. 부부 사이는 세 개의 시기가 있다고 한다. 청년기에는 정으로 살고, 중년기에는 예로 살며, 노년기에는 의로 산다고 한다. 이 부부는 의로 살 시기였건만 정으로 산다. 남편은 늘 부인의 낯을 엿보아 기쁘게만 해주려 하고 입 맞추기, 레스토랑 가기, 연극장 가기, 지방 연설하러 갈 때면 동반하여 같이 가기 등 일시라도 떨어지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오히려 따로 돈다. 저녁밥을 먹고 난 이후에는 다 각각 밤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간다. 부부는 서재에 남아 남편은 신문을 읽고 부인은 그 옆에서 뜨개질을 하며 종일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할 일을 상의한다. 그리고 자러 들어간다.
유럽인의 생호라은 성적 생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구나 파리같이 외적 자극과 유혹이 많은 곳이 있으랴. 이들의 내면을 보면 별별 비밀이 다 있겠지만 외면만은 일부일처제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자유로운 곳에 참사랑이 있는 듯싶다.
p.115-116

빨래하는 마음 - 강경애

남편과 날마다 쌈하게 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가정 일에 서툴러서 그러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적으나마 가정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을 깊이 알고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빨래를 하였습니다. 애벌 빠는 것은 비누칠만 해서 방망이로 두드리면 되니까 그리 어려울 것이 없으나 애벌 빤 것을 잿물에 삶는 것이 서툴러서 퍽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잿물을 너무 많이 풀었던 모양입니다. 손끝이 다 빨갛게 벗겨져서 며칠이나 앓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흥!흥! 하고 비웃었습니다. 나는 끝없이 원망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지나기를 한 일 년이 넘으니 힘들던 빨래질에도 일종의 취미가 붙으며 때로는 예술적 감흥이 생기더이다.

가는 부인, 오는 부인, 나는 햇빛을 눈두덩에 받으며 지나가는 부인의 빨래 광주리를 보았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빨래! 나는 그 순간에 그 흰 빨래가 내 가슴에 선뜻 부딪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저 빨래! 저것은 정성스레 빨래한 저 부인의 순결한 마음을 대표하는 듯하였나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어린애들을 생각하며 곱게 씻은 저 빨래,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을 대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봄볕은 저들의 다정한 맘에 따뜻하게 비치는 듯하외다.
강가에까지 온 나는 빨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강가에는 방망이 소리로 요란하였습니다. 봄 하늘 아래 방망이소리, 얼마나 시원한 소리입니까. 나는 나의 어리석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저 하늘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의 나는 하늘을 건너 펄펄 나는 새의 몸같이도 가벼운 듯합니다.
내 손끝은 물에서 헤엄을 칩니다. 빨래는 희어집니다. 헹구면 헹굴수록 희어지는 이 빨래, 새 옷을 입을 때의 쾌감보다도 좋습니다. 때가 묻어 더러운 빨래가 눈이 시리도록 희어지는 쾌감이야말로 빨래하는 이가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무심히 보니 내 손끝은 파란 물결 속에서 붉게 타오릅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며 ‘봄이다!’하고 중얼거렸나이다.
p.160-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