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통적인 디자인을 다루는 책을 읽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최근 몇년 간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주제는 훨씬 디자인의 원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약간은 두서없고, 약간은 협소하고, 약간은 지루하다. 물론 내가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겠냐만은, 책 전체가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가끔씩 눈에 띄는 이야기, 눈에 띄는 사례들이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얻은 것이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스크랩 한 내용.

한편 사토 마사히코는 이 스탬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을 때는 환영이라는 느낌의 스탬프가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스탬프를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 보니 현재의 중립적인 상태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디자인에는 쓸모없이 남아도는 메시지가 너무 많으니까.” 현재의 스탬프도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있니 않은가? 괜히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므로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답을 찾았음에도 그것을 더욱 정밀하게 수정하는 신중함과 성의는 원리를 실용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세한 센스의 일부분이리라. p. 50

 

이런 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위를 치밀하게 탐구하면서 그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후카사와의 방식이다. 이것은 ‘어포던스’라는 새로운 인지이론을 연상시키는 사고방식이다. 어포던스는 행위의 주체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을 성ㄹ립시키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나가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서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afford)’고 할 수 있다. p. 63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단 취급하는 영역을 시각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촉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각 채널을 향하여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전시회 티켓. 인쇄된 사진이나 문자는 시각적인 것이지만 그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 종이는 추상적인 하얀색 평면이 아니다. 손끝에 섬유의 질감을 전해 주는 물질로서 미세하게나마 무게감도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손바닥에서 둥글게 말기도 하고 반으로 접기도 한다. 즉 그것은 촉각의 자극을 싣고 있다. 그리고 만약 거기 인쇄된 것이 깊은 숲의 사진이라면 그것은 시각에 그치지 않고 청각과 후각 등의 기억까지도 미묘하게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뇌리에는 몇 가지 자극의 축적에 의한 복합적인 이미지가 태어나게 된다. 말하자면 정보를 다루는 인간은 감각 기관의 다발이다. 이렇게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디자이너는 각종 정보를 조합한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p. 71